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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보/진학지도

학종시대 -'생기부 스펙' 편법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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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소재 고등학교 교사 박모(29)씨는 최근 교내 동아리 관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3월 초 새로 개설된 동아리만 100개가 넘기 때문. 박 씨는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유리한 기록을 만들기 위해 1인당 8개~10개씩 가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박 씨가 지도교사로 지정된 동아리만 30개 남짓 된다. 박 씨는 “상식적으로 3개만 해도 힘든데 10개라면 활동 안 하는 게 뻔하다. 그래도 입시와 연관되어 있어 생떼를 쓰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학교와 무관한 교외 활동이나 대회는 대입 전형에 포함되지 못하기 때문에 특정 대학 행사에 학교가 참여하는 협약을 맺는 방식으로 생활기록부에 등재되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일례로 학교가 특정 대학 주최 논문 공모에 참여하는 협약을 체결하고 해당 학생의 논문이 당선되면 생활기록부에 등재하는 식이다. 부모가 대학 교수 등일 경우에 소논문을 대신 써주는 일도 있다.

 

국내 주요 대학의 경우 수시모집 비중이 70%를 넘어서면서 1년에 100개씩 교내 경시대회에 참가하거나 동아리를 8~10개씩 가입시키는 등 비현실적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부모들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대학 입시에서 학생부 종합전형의 비중이 커지면서 ‘눈길 끄는 스토리’를 담은 생활기록부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 거세지는 추세다. ‘자동봉진’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내신등급 못지않게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 학생부에 기재되는 세부 항목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따른 것이다.

 

 

눈길가는 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 만들기 혈안

8~10개 동아리·100개 경시대회 참여 등 ‘비현실’ 난무

 

고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전업주부 김희연(45)씨는 이번 여름방학에 과학 동아리를 만들 계획이다. 딸 친구 엄마들과 커뮤니티를 통해 성적이 엇비슷한 학생 4명을 모았고, 지도교사 섭외만 남겨 놓은 상태다.

 

김 씨는 “기존에 활동하는 동아리도 있지만 내 아이가 두각을 나타내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자율동아리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며 “엄마들끼리 모여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 게 좋을지를 의논하고 필요한 경우엔 명문대 교수에게 상담을 받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일정 숫자 이상의 학생이 모여 동아리 운영 계획서를 제출, 허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자율동아리는 조직단계부터 주도적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학생부 기록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라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서울 영등포 소재 고등학교 진학부장 김모(42)씨는 “학생과 학부모 모두 생활기록부를 위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최근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동아리가 우후죽순 생겨나거나 목표로 하는 대학의 교양과목을 분석해 동아리에서 진행할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식이다. 김씨는 “특이한 이력을 통해 눈길을 끌기 용이한 활동에 학생들이 몰리고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자녀가) 자신 있는 과목의 교내 경시대회를 더 많이 개최해 달라는 민원까지 쇄도한다”고 토로했다.

 

 

 

특목고는 4등급까지 일반고는 내신 1등급만 ‘학종’ 준비

 ‘끈 있는’ 대학과 무리한 협약 체결 종용하는 부모도 있어

 

모든 학생들이 학생부 관리에 열을 올리는 건 아니다. 강남 지역에서 입시컨설팅을 맡고 있는 이모(40) 대표는 “특목고 최상위권이면 서울대만 쓴다. 2·3·4등급은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연고대를 준비하고 5·6등급은 서류가 필요 없는 논술전형을 중점적으로 준비한다”며 “기본은 내신 성적인데 고등학교 1학년 말쯤 되면 윤곽이 잡힌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일반고는 내신 1등급만 학생부를 관리해 특목고에 비해 범위가 훨씬 좁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상위권에 스펙을 몰아주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극성 부모들은 고등학교에 대학과의 협약을 종용하기도 한다. 부모가 대학 교수이거나 집안이 재단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활기록부에 대외활동을 기록할 수 없는데 대학과 고등학교가 협약을 맺으면 준비과정을 교내활동으로 상세히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고등학교의 진학부장 손모(45)씨도 최근 막무가내로 대학과 협약을 체결해달라는 한 학부모의 민원때문에 진땀을 흘렸다. 손씨는 “A학교의 교수로 재직중인 부모가 자녀의 생기부 ‘자동봉진’을 풍부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며 “실제로 또 다른 인문계 학생은 생물탐구 쪽 과학경시대회에서 수상했다. 부모가 해당 대학교수이고 심사위원이 교수 친구여서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이 일반고 및 자공고 소속 학년부장/기획 및 진로진학부장 419명을 대상으로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생 선발에 적합한 전형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73%, 부정적이라고 답한 의견이 23.9%로 나타났다. 긍정적 평가 이유로는 다양한 학생 선발, 수업참여도 증가 등이 꼽혔다.

 


 

물리Ⅱ·화학Ⅱ 등 ‘심화과목’ 위해 특목고 준비 매몰…R&E 대필 1건당 수 백 만원씩

교사·부모따라 ‘복불복 전형’ 전락 가능성 커 소외된 학생은 상대적 박탈감 느끼기도

 

프라임사업 등 대학 구조조정의 여파로 자연계열 정원이 확대되면서 과학고에 탈락한 학생들 중 상당수가 서울고·경기고·반포고 같은 수학·과학 심화 교육이 이뤄지는 과학중점학교로 몰리고 있다. 생활기록부에 물리Ⅱ·화학Ⅱ 등 과목 수강 내역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사교육에 있다. 특목고 입시에 매몰된 중학생의 경우 수학과 과학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영역의 학습능력은 처지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욕심 탓에 전인적인 발달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대학교수나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실험과 연구를 진행하는 R&E(Research & Education)도 변질된 지 오래다. 부모가 대신 써주거나 학원에 한 편당 수 백 만원을 지불하고 대필을 시키기도 한다. 누가 썼는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입시를 지도하는 학원 원장 김모(40)씨는 “대신 써줬느냐 아니냐를 학교가 따지진 않는다”고 밝혔다.

 

학교별 생활기록부 관리 격차 탓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많다. 교사와 학교의 성향·자질에 따라 ‘복불복’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고등학교 3학년생 김소연(19)양은 “우리 학교는 자율동아리를 신청해도 허가를 잘 안 해준다. 나도 동아리를 많이 하고 싶고 경시대회도 많았으면 좋겠다”며 “소논문 쓰는 게 일반 학생이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부모의 소득수준과 거주지역에 따라서 입시 스펙이 좌우되는 현실에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는 학생들도 많다. 서울 성북구에 자리한 고등학교 3학년생 이지훈(19)군은 “사립초부터 강남 토박이인 내 친구는 1년에 두 세 번씩 1편당 500만원짜리 소논문 과외를 받는다. 소논문 대필에만 1,500만원이 드는 셈”이라며 “나만 뒤처지는 느낌에 엄마 아빠를 원망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이 군은 “나처럼 소외된 학생은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공정해야 할 학교가 치맛바람, 바짓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현실에 불만을 토로했다.

 

교육 불평등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최근 서울교육청은 수익자부담 R&E를 전면 금지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침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 씨는 “소논문을 과목별 보고서라는 형태로 살짝 변환시켜서 수행평가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며 “아무리 대학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발표해도 다른 아이들이 다 하는데 손 놓고 있을 부모는 없지 않냐”고 말했다.

 

김나영·정수현기자 iluvny23@sedaily.com